K드라마에서 남혜승 음악감독의 존재감
K-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에만 있지 않다. 때론 대사보다 앞서 시청자의 심장을 파고들고, 어떤 장면의 여운을 한참 뒤까지 남기는 힘, 그건 바로 음악이다. 그리고 그 음악의 중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중 하나가 남혜승 음악감독이다.
남혜승은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탄탄한 음악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적 작곡가의 틀에 머물지 않았다. 드라마라는 극적 예술을 음악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는 스토리텔러이자 감정 설계자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녀의 음악은 단순히 “좋은 노래”가 아니다. 주제곡, 배경음악, 연주곡까지 모든 음악이 극의 장면과 캐릭터 감정의 결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특히 남혜승의 OST는 대부분 하나의 테마를 축으로 삼는다. 그 테마를 곡조, 악기, 템포, 화성 등 여러 음악적 요소로 변주해, 극 전반에 걸쳐 감정의 맥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덕분에 같은 멜로디라도 행복, 슬픔, 설렘, 상실처럼 서로 다른 감정으로 색채가 바뀐다. 음악 하나가 수십 가지 얼굴을 가진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그녀는 음악을 “장면을 꾸미기 위한 배경”으로만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이 극의 운명을 예고하거나, 혹은 시청자 몰입을 극대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도깨비의 운명, 미스터 션샤인의 역사적 울림, 사랑의 불시착의 은은한 위로, 그 해 우리는의 청춘의 숨결, 눈물의 여왕의 사랑과 권력의 파도까지. 남혜승 감독의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다.
그녀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드라마적 음악’을 넘어, 음악이 곧 드라마가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드라마 보기도 전에 OST부터 듣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감정의 언어로 세계를 통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바로 남혜승이다.
도깨비
드라마 개요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방영 시기: 2016.12.02. ~ 2017.01.21.
- 제작진: 김은숙 작가, 이응복 감독
- 주요 출연: 공유(김신), 김고은(지은탁), 이동욱(저승사자), 유인나(써니), 육성재(유덕화)
tvN의 <도깨비>는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 김신이 ‘도깨비 신부’ 지은탁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운명적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로, K-드라마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 중 하나다. 남혜승 음악감독은 이 드라마에서 단순히 장면을 ‘꾸미는’ 음악이 아니라 극의 운명을 설계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대표곡 찬열&펀치의 “Stay With Me”는 경쾌하면서도 애틋한 리듬으로 김신과 지은탁의 설렘을 그려냈고, 크러쉬의 “Beautiful”은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품었다. 특히 에일리의 “I Will Go to You Like the First Snow(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극 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서 터져 나와, 시청자들의 감정선을 폭발시켰다. 이 곡은 드라마 종영 후에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겨울만 되면 다시 차트를 거니는 ‘계절송’이 됐다.
남혜승은 도깨비의 신비롭고 애절한 세계관을 피아노와 스트링 중심의 서정적인 사운드로 풀어냈다. 그녀의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서, 극 중 운명이라는 키워드를 음악적으로 암시하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반복되는 테마와 감정의 점층적 전개가 돋보이며, 남혜승 특유의 변주 기법이 극적 몰입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도깨비>는 “음악이 기억되는 드라마”로 남았다.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 개요
- 장르: 역사 로맨스 드라마
- 방영 시기: 2018.07.07. ~ 2018.09.30.
- 제작진: 김은숙 작가, 이응복 감독
- 주요 출연: 이병헌(유진 초이), 김태리(고애신), 유연석(구동매), 변요한(김희성), 김민정(히나)
<미스터 션샤인>은 조선말 격변기를 배경으로 신분의 벽과 시대의 파고를 넘어 사랑과 나라를 지키려는 인물들의 서사를 담았다. 드라마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 한 장면 한 장면의 무게를 완성한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남혜승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클래식 기반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깊은 울림을 주며, 시대극 특유의 장엄함과 인물들의 비극적 로맨스를 동시에 그려냈다. 대표곡 백지영의 “See You Again(Feat.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라의 낮고 묵직한 선율과 백지영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결합되어 유진과 애신의 비극적 사랑을 상징했다. 박효신의 “The Day(그 날)”는 이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가슴을 울렸다. 연주곡 “Sad March”와 “Glory”는 독립군들의 결연한 각오를 음악으로 전하며, <미스터 션샤인>만의 역사적 무게감을 더욱 공고히 했다.
남혜승의 음악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 특히 돋보인다. 각 인물에게 주제를 배정하고, 그것을 변주해 극적 긴장감과 감정의 파동을 조절한다. 장면별로 음악이 장엄하게 치솟았다가, 때로는 절제된 현악으로 한 인물의 고독을 드러낸다. 이런 감정의 미세한 농도 조절이야말로 남혜승 음악감독의 독보적인 역량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녀의 음악 덕분에 ‘역사극의 감정미학’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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