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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Director

정재일 음악감독의 실험적 사운드<오징어게임>, <기생충>의 긴장과 예술성

by 드사 뮤직 2025. 6. 13.

정재일 음악감독의 대표작 <Squid Game>, <Parasite> 포스터 이미지

 

OTT 시대가 도래하면서 K-드라마와 한국 영화의 음악적 수준도 한층 진화했습니다. 더는 OST가 단순한 삽입곡에 머물지 않고, 이야기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확장하는 사운드 연출이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정재일 음악감독입니다.

그는 클래식, 국악, 재즈, 일렉트로닉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오징어게임, 기생충 같은 글로벌 흥행작에서 감정이 아닌 구조와 정서를 지배하는 음악으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재일 감독의 음악적 이력과 대표작을 통해, 그가 만들어낸 ‘들리는 긴장’과 ‘보이지 않는 예술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음악 천재에서 사운드 아티스트로 – 정재일의 음악 여정

정재일은 1982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으며 13세에 이미 작곡을 시작한 음악 영재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즈 피아노와 클래식 작곡을 병행했고, 이후 군악대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인 연주와 편곡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는 1999년 록 밴드 패닉(Panic)의 멤버로 데뷔한 이적과 협업하며 음악계에 본격 등장했고, 이후 윤상, 김동률, 이소라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 감독 및 세션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이소라의 콘서트/앨범에서 편곡과 오케스트라를 맡으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고, 클래식과 팝, 국악의 접점을 탐구하는 실험적인 무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뮤지컬 음악감독과 영화 음악감독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보다 ‘서사적인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2018년 버닝을 시작으로, 2019년 기생충, 2021년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정재일은 음악이 ‘해석의 도구’이자 ‘서사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미학을 구현하게 됩니다.

오징어게임 – ‘차가운 아이러니’를 들리게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2021)은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문화적 신드롬이 된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생존 게임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드러내며, 잔혹성과 동심, 공포와 무감각함이 공존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이러한 이질적 감정을 음악으로 철저히 설계했습니다.

  • 대표 OST: Way Back Then, Pink Soldiers, Round VI
  • 음악적 접근: 유년 시절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음향, 전자음과 불협화음의 병치
  • 감정 연출: 감정 몰입을 유도하지 않고 ‘냉정한 거리감’을 만드는 사운드

특히 유치원 풍의 리듬과 유사한 Way Back Then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면과 결합해 시청자에게 소름과 공포를 동시에 유발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기생충 – 계급을 들리게 만드는 음악적 설계

기생충(2019)은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정재일은 이 영화에서 계급, 공간, 정체성의 구조를 음악으로 시각화하는 탁월한 연출을 보여줬습니다.

  • 대표 OST: The Belt of Faith, Zappaguri, Soju One Glass
  • 음악적 접근: 바로크 양식의 클래식 테마 활용, 현악기 중심의 절제된 선율, 정적인 긴장
  • 사운드 미학: 상류층에는 우아함과 품격을, 하류층에는 침묵과 파열음을 설계

기생충에서 음악은 이야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지배합니다.

정재일 음악의 핵심 – ‘설명’이 아닌 ‘해석’의 도구

정재일 음악감독은 대중적인 테마 음악을 지양합니다. 그는 “음악은 설명이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강제로 이끌지 않고, 감정의 틈과 심리의 공간을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 심리적 거리 유지
  • 사운드의 여백
  • 장르적 해체

정재일 음악감독은 단순히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서사를 해석하고 정서를 구성하는,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오징어게임에서는 무심한 공포를, 기생충에서는 공간의 차이를, 그리고 앞으로의 작품들에서는 그만의 언어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입니다.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조차 긴장과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무음의 사운드’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재일의 음악에 귀 기울여 보세요. 새로운 감상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