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일 음악감독 ― 장면보다 먼저 말하는 음악의 언어
K-드라마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요소는 연출과 대사만이 아닙니다. 장면을 감싸고, 감정을 머물게 하고, 여운을 남기는 소리, 바로 음악이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이러한 음악의 감정 설계를 가장 잘 실현해 온 인물이 박성일 음악감독입니다. 그는 《미생》,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이태원 클라쓰》, 《시그널》 등 수많은 작품에서 음악으로 인물의 심리를 확장하고, 장면의 정서를 정리하며, 시청자의 감정을 이끌어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대표작 3편을 중심으로 박성일 음악의 정체성과 감정 설계 방식, 그리고 그의 음악이 왜 유독 오래 남는지 살펴봅니다.
미생 ― 현실의 무게를 버티는 사람들의 침묵을 노래하다
- 제목 : 미생
- 장르 : 휴먼 드라마
- 방영 시기 : tvN, 2014.10.17. ~ 2014.12.20.
- 감독 : 김원석
- 주요 출연 : 임시완(장그래), 이성민(오상식), 강소라(안영이)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과 생존을 냉정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 휴먼 드라마로,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음악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감’으로 설계했습니다. 그는 드라마 속 갈등이나 감정 폭발을 음악으로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고, 주인공 장그래의 무심한 표정과 무거운 발걸음을 담담히 따라가듯 음악을 배치했습니다.
대표곡 이승열의 「Fly(날아)」는 담백하고 절제된 피아노 패턴과 낮은 현악이 중심을 이루며, 감정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현실의 무게감을 묵직하게 전합니다. 이 곡은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피하면서도, 듣는 이에게 현실에서 오는 외로움과 좌절을 정직하게 전합니다. 「한 걸음만」, 「돌아보다」 같은 연주곡도 복도, 회의실, 지하철 같은 평범한 공간에 깔리며, 무심한 일상을 감정이 머무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박성일의 음악은 대사 없이도 장면의 공기를 만들어내며, 침묵의 무게를 음악으로 치환합니다. 그는 미생을 통해 “음악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장면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소리의 크기가 아닌, 여백과 간결함으로 힘을 발휘하며, 시청자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립니다. 덕분에 미생은 단순한 직장 드라마를 넘어,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로 남았습니다.
나의 아저씨 ― 상처를 껴안는 듯한 음악의 온도
- 제목 : 나의 아저씨
- 장르 : 휴먼 드라마
- 방영 시기 : tvN, 2018.03.21. ~ 2018.05.17.
- 감독 : 김원석
- 주요 출연 : 이선균(박동훈), 아이유(이지안), 박호산(박상훈)
나의 아저씨는 사회의 가장 외곽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상처와 연대를 깊이 있게 그린 작품입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이 드라마에서 음악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의 내면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기능하게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고, 때로는 말 없는 공감을 건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표곡 「어른」(Sondia)은 절제된 멜로디와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이지안(아이유)의 침묵과 고통, 단단함과 흔들림을 모두 담아냅니다. 단 한 마디도 소리 높여 울부짖지 않지만, 그 곡은 이 드라마의 정서를 압축한 상징과도 같습니다. 「무례한 사람」, 「Myself」, 「An Ordinary Day」 같은 연주곡도 감정의 과잉을 철저히 배제하고, 짧은 선율로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특히 제휘의 「Dear Moon」은 이지안의 외로움과 희망을 달에게 속삭이듯 풀어내며, 극 중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완성합니다. 박성일은 《나의 아저씨》를 통해 음악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침묵의 사이를 채우고, 눈빛 너머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휴먼드라마를 넘어, 상처와 치유의 서사로 승화시켰습니다.
덕분에 《나의 아저씨》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도 눈물이 흐르는, 고요하지만 가장 뜨거운 드라마로 기억되며, 박성일의 음악은 그 여운의 중심에 자리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 ― 패기와 상처, 청춘의 불꽃을 음악으로 그리다
[작품 개요]
- 제목 : 이태원 클라쓰
- 장르 : 청춘 드라마, 복수극
- 방영 시기 : JTBC, 2020.01.31. ~ 2020.03.21.
- 감독 : 김성윤
- 주요 출연 : 박서준(박새로이), 김다미(조이서), 유재명(장대희), 권나라(오수아)
《이태원 클라쓰》는 청춘의 패기와 복수, 그리고 자아실현을 다룬 드라마로, 젊은 세대의 분노와 희망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박성일 음악감독은 열정과 상처, 청춘의 질감을 음악으로 녹여내며 드라마의 감정선을 극대화하였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배경음악을 넘어서, 주인공들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강한 의지를 음악으로 구현해냈습니다.
대표곡 중 하나인 가호의 「시작」은 경쾌한 드럼 비트와 고조되는 멜로디로, 박새로이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이 곡은 드라마의 주요 장면뿐 아니라 현실 속 청춘들에게도 꿈과 도전의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윤미래의 「Say」, 김필의 「그때 그 아인」 등은 극 중 인물들의 고독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설렘을 다양한 색채로 담아내며 드라마의 감정 폭을 더욱 넓혔습니다. 특히 「그때 그 아인」은 잔잔하면서도 절절한 보컬과 미니멀한 편곡이 박새로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도시적이고 트렌디한 사운드와 클래식한 현악 편곡을 함께 활용해, 극 중 이태원의 화려함과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쓸쓸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시끄러운 배경 속에서도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에 맞춘 음악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으며, 극의 전개에 따라 음악의 리듬과 톤을 자유롭게 조절해 극적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단순히 성공을 향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의 연대와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박성일 감독의 음악은 이런 드라마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이 전달하며, 각 장면에 감정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장면을 꾸미는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결심과 성장의 과정을 소리로 기록한 또 하나의 서사였습니다. 덕분에 《이태원 클라쓰》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여전히 청춘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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