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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Director

박성일 음악감독 <미생>,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by 드사 뮤직 2025. 6. 13.

박성일 음악감독의 대표작 <미생>,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이미지

 

K-드라마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요소는 연출과 대사만이 아닙니다. 장면을 감싸고, 감정을 머물게 하고, 여운을 남기는 소리, 바로 음악이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이러한 음악의 감정 설계를 가장 잘 실현해 온 인물이 박성일 음악감독입니다.

그는 《미생》,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이태원 클라쓰》, 《시그널》 등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에서 음악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확장하고, 장면의 정서를 정리하며, 시청자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곡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대표작 3편을 중심으로 박성일 음악의 정체성과 감정 설계 방식, 그리고 왜 그의 음악이 유독 오래 남는지 살펴봅니다.

1. 《미생》 – 현실의 무게를 버티는 사람들의 침묵을 노래하다

《미생》은 직장인들의 고된 삶과 조직 속 생존을 담은 드라마로, 감정적 과장 없이 담백한 연출로 주목받았습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장면의 흐름에 감정을 실어주는 대신, 인물의 침묵을 감싸는 음악 설계를 선보였습니다. 주인공 장그래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지만, 그의 좌절과 고민은 음악을 통해 더 깊이 전해집니다.

대표 OST인 이승열의 ‘Fly(날아)’는 반복되는 피아노 패턴과 낮은 음역대의 스트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자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피해 감정의 침전만을 남깁니다. ‘한 걸음만’, ‘돌아보다’와 같은 연주곡은 회의실, 복도, 지하철 같은 익숙한 공간에 슬며시 배치되어 일상을 감정 공간으로 전환시킵니다. 박성일은 이 드라마를 통해 음악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장면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음악이 침묵의 무게를 감정으로 환산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2. 《나의 아저씨》 – 상처를 껴안는 듯한 음악의 온도

《나의 아저씨》는 사회의 외곽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가혹한 현실과 조용한 연대, 서로를 껴안는 장면들 속에서 음악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언어로 등장합니다. 박성일은 이 작품에서 단순히 분위기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감정의 기복을 정제된 선율로 디자인합니다.

특히 ‘어른’(Sondia)은 드라마 OST를 넘어 K-드라마 음악사의 명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곡은 절제된 멜로디와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이지안(아이유)의 침묵과 고통, 단단함과 흔들림을 모두 담아냅니다. 그 외에도 ‘무례한 사람’, ‘Myself’, ‘An Ordinary Day’ 등은 감정의 과잉을 철저히 배제하고, 짧은 연주로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기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곡은 제휘의 ‘Dear Moon’이 있습니다. 이지안의 감정을 달에게 속삭이듯 표현한 곡으로, 극 중 가장 고요한 장면에 배치되어 장면의 여운을 깊게 만듭니다. 이 곡은 박성일의 감정 설계 전략과 조화를 이루며, 말 없는 공감을 극대화합니다.

박성일은 ‘나의 아저씨’를 통해 음악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오히려 인물의 고요한 변화와 내면의 울림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 을 입증했습니다.

3. 《폭싹 속았수다》 – 제주라는 공간, 인생이라는 시간을 설계하다

《폭싹 속았수다》는 70년에 걸친 인생과 제주라는 공간의 정서를 담은 대서사 드라마입니다. 박성일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OST 음악이 아닌, 공간의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사운드로 해석하는 작업을 펼쳤습니다.

대표곡 ‘그 바다’(헤이즈)는 장소와 사람, 시간과 감정이 응축된 곡으로, 서정성과 지역성, 개인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흘러 흘러’ 같은 연주곡에서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등 자연음과 제주 민속 악기를 디지털적으로 결합해, 공간 그 자체를 사운드 화합니다.

특히 시대별 에피소드마다 사운드 믹싱과 악기 배치를 달리해, 1950년대의 국악 기반 음악과 2000년대 이후의 현대적 피아노·스트링 구성을 대비시켰습니다. 이는 한 시대가 지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단지 영상으로 가 아니라 음악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박성일 음악감독의 음악은 말보다 먼저 울지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인물의 감정에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라붙는 방식으로, 장면이 말하지 못한 정서를 음악으로 완성합니다. 《미생》에서의 침묵, 《나의 아저씨》에서의 위로, 《폭싹 속았수다》에서의 공간감까지—그의 음악은 언제나 여백 속에서 말 없는 진심을 들려줍니다. 다음에 그가 만든 음악이 흐르면, 눈보다 귀를 먼저 열고 느껴보세요. 그 장면의 진짜 정서는 바로 음악에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