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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Director

한국 영화 음악의 품격, 방준석 음악감독 <사도>, <자산어보>, <모가디슈>

by 드사 뮤직 2025. 6. 14.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 음악상 & 2015년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 (사도) / 2021년 제42회 청룡영화상 음악상 (자산어보) / 2021년 제4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 & 2021년 제30회 부일영화상 음악상 (모가디슈)

 

방준석 음악감독은 시대극부터 정치극, 휴먼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영화의 깊이’를 더하는 음악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한국 영화 음악가입니다. <사도>의 비극성, <자산어보>의 묵직한 서정, <모가디슈>의 긴장과 인간미까지—그의 음악은 장면을 넘어서 ‘정서’를 설계하며, 작품 전체의 품격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음악적 언어와 한국 영화에 기여한 미학을 분석합니다.

유앤미블루에서 영화음악까지: 밴드 출신 감독의 감성

방준석 음악감독은 영화음악계에 입문하기 전, 전설적인 인디 록 듀오 '유앤미블루(You&Me Blue)'의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싱어송라이터 이승열과 함께 1990년대 한국 록 음악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이끌었고,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음악 세계로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그의 영화 음악은 이러한 밴드 시절의 감성과 실험정신에서 비롯된 깊은 감정선과 구조적인 사운드 미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이야기의 또 다른 층위’를 형성하는 정서적 구조로 기능하는 것이 방준석 음악감독의 진정한 강점입니다. 음악을 통해 장면의 의미를 설명하거나,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능력은 밴드 시절부터 다져온 감성적 직관의 산물입니다.

<사도>: 비극과 품위를 동시에 담은 음악

2015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라는 역사적 비극을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이 영화에서 감정의 고조보다는 절제된 서정성과 품격 있는 비극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도>의 음악은 클래식한 스트링 편성과 느린 템포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격정적인 사운드보다 감정을 감싸는 듯한 정적 음악이 주를 이룹니다. 이는 감정 과잉을 피하고, 오히려 관객이 인물의 내면과 고통을 곱씹도록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는 마지막 장면의 음악은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감정을 이끌며, 고요함 속 절규를 완성합니다.

방준석은 <사도>에서 감정의 밀도를 음악으로 설계했고, 한국 시대극 사운드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과장 없는 감정 음악’의 정점이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산어보>: 흑백화면을 채우는 서정적 사운드

<자산어보>(2021)는 정약전과 어부 창대의 사제관계를 그린 흑백 시대극으로, 대사 중심의 철학적 드라마입니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침묵과 음악의 거리’를 섬세하게 설계했습니다.

흑백의 영상미에 어울리는 낮은 음역대의 선율, 동양적 음계 기반의 간결한 테마는 <자산어보>의 정서적 구조를 지탱합니다. 음악이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주제를 무게감 있게 끌고 가되, 인물 간의 소통에는 여백을 남기는 방식으로 연출되어, 사운드가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장면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방준석은 이 작품에서 서정성과 철학을 동시에 품은 음악을 만들어냈고, ‘말보다 마음을 전하는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철학—“음악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기다리는 것이다”—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모가디슈>: 긴박함 속 인간미를 그려낸 음악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2021)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고립된 대사관 인물들의 탈출을 그린 정치 드라마입니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긴장과 감동, 인간애의 흐름을 음악으로 이끌며 장르적 음악성과 감정 설계의 균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반 내전의 혼란과 정보전 속에서는 리드미컬한 전자 사운드와 퍼커션이 극도의 긴장감을 유도하고, 탈출 시퀀스에서는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과 드럼이 혼합된 긴박한 사운드가 극의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대립하던 남북 대사관원들이 함께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낮은 스트링과 피아노가 어우러진 감성적인 테마가 등장하며, 방준석 특유의 ‘인간을 위한 음악’이 정점을 찍습니다.

<모가디슈>는 상업성과 진정성이 조화를 이루는 드문 사례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영화의 리듬을 설계하는 도구’로서 기능합니다. 방준석은 이 작품을 통해 장르영화 속에서도 인간 중심 음악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에는 늘 그의 음악이 있었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한국 영화의 감정과 미학을 음악으로 완성하는 아티스트였습니다. 그는 소리를 통해 장면을 설명하지 않고, 인물의 감정을 기다리고, 여운을 남기며 관객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도록 안내했습니다. <사도>의 품위 있는 비극, <자산어보>의 철학적 서정, <모가디슈>의 인간적 긴장까지—그의 음악은 영화가 말하지 못한 정서를 완성하며, ‘한국 영화 음악의 품격’을 끌어올렸습니다.